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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일상

연금복권을 샀다

by 티라 2024. 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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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퇴사를 부르짖으며 제발 연금복권에 당첨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복권 사는 게 귀찮아서 미루고 미루다가 구매했다. 저번에 한번 낙첨돼서 상실감에 1년 넘게 연금복권 홈페이지에 접속을 안했더니 아이디가 삭제되었다. 아무리 해도 로그인이 안돼서 고객센터에 전화했더니 알게 됐다. 연금복권 고객센터는 밤 11시 40분에 전화해도 상냥하게 받아준다. 다시 회원가입하는 것도 귀찮았지만 복권판매점까지 현금을 들고 찾아가는 게 더 귀찮아서 그냥 가입했다. 복권은 현금구매만 가능해서 현장구매가 정말 번거롭다. 현금은커녕 지갑도 안들고 다닌지 오래됐다.

연금복권 사는 방법은, 같은 번호로 5개조를 구매하는 것이다. 그래야 1,2등 동시당첨이 가능하다. 지난주 당첨자도 1,2등 동시당첨자였다. 그리고 인터넷 복권과 같은 번호로 현장구매도 하면 이중당첨이 가능하다. 1년 전에 살 때는 몰라서 아무렇게나 구매했는데, 오늘은 같은 번호로 5개조를 구매했다. 번호는 생각하기 귀찮아서 자동번호를 돌렸다.

나는 정말 게으르고 귀차니즘이 심한 것 같다. 복권사러 나가는 것도 귀찮아서 인터넷으로 구매했다. 무기력증에 걸린 게 아닐까 의심될 정도다. 집에서 나가는 것도 안좋아하고 씻는 것도 힘겨워한다. 그런데 웃긴 건 머리부터 발끝까지 후다닥 씻으면 10분 걸린다. 몇분 걸리나 궁금해서 두어번 재봤다. 천천히 씻으면 15~20분이 걸리지만 쉴새없이 움직이면 10분컷이 나왔다. 그래서 요즘은 딱 10분만 참자고 생각하며 겨우겨우 씻는다. 그리고 머리 말리는 것도 너무 너무 싫어하는데, 너무 싫어서 오히려 빨리 말리는 법을 터득해서 5분만에 다 말린다. 머리 끝부분은 드라이기로 100% 건조하는 게 오히려 머릿결을 상하게 한다고 해서, 두피쪽만 완벽하게 말린다. 두피부터 말리면 머리가 엄청 빨리 마른다. 그리고 뜨거운 바람과 찬바람을 번갈아서 쐬주면 더 빨리 마른다. 머리숱이 엄청 많고 머리길이도 긴데 5분만에 말릴 수 있는 비결이다. 

1,2등 연금복권에 당첨되면 세후 실수령액이 약 500만원 정도라고 한다. 현장구매까지 하면 천만원이다. 만약 당첨되면 현장구매를 하지 않은 것에 피눈물을 흘리며 후회할 것이다. 내일이라도 현장구매를 하러 나갈까? 아직 5일 남았으니까. 당첨되면 어떤 기분일까? 심장이 두근거리고 손이 덜덜 떨리겠지? 그리고 누구한테 말할지 혼자만 알고 지낼지도 고민되겠지? 나는 배우자한테만 얘기하고 싶은데 그럼 결국 온가족이 알게 될 것 같다. 근데 숨기려면 퇴사를 못한다. 퇴사하려면 배우자에게 말을 하거나, 매일 출근하는 척 연기해야 한다. 나는 연기를 못하기 때문에 말을 할 수밖에 없다. 퇴사하려고 복권 산건데 배우자한테 숨기려고 퇴사를 못하다니 그것도 웃긴다. 근데 딱 배우자까지만 알고 쉬쉬하면 좋을텐데, 사람 일이라는 게 비밀유지가 쉽지 않다. 여차저차해서 온 가족이 알게 되면 괜히 가족들과 사이가 멀어질까봐 걱정이다. 멀쩡한 직장을 왜 퇴사하냐부터 시작해서 엄청 잔소리 폭격을 듣고 고나리질을 당할 게 뻔하다. 각종 기념일마다 고가의 선물을 기대할 것이고 돈을 빌려달라는 말도 분명 여기저기서 들을 것이다. 결국 퇴사안한 척 연기를 하는 게 답일까? 집 밖에 나가는 것을 싫어하는 내가 매일 출근하는 척 연기하느라 집 밖을 나서야 한다니... 상상도 할 수 없다. 배우자한테 제발 비밀 지켜달라고 하고 그냥 말해야겠다. 

당첨되면 하고싶은 일은 당연히 누구나 꿈꾸는 퇴사와 내집마련이다. 그런데 사회활동을 완전히 멈추면 많이 심심하고 외로울텐데 그것도 걱정이다. 이건 오래전부터 하던 고민인데, 퇴사나 은퇴를 하고나면 내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지 정말 너무 막막하다. 아무리 집순이라도 다 큰 성인이 아무런 사회활동없이 집에만 있으면 정신건강에 매우 안좋고 완전 인생낭비 그 자체다. 행복한 어른이 되려면 안정적인 가정과 사회적으로 활동하는 네트워크가 있어야 한다. 교회를 열심히 다녀볼까? 맘카페 열혈회원이 될까? 헬스에 미쳐볼까? 학원에 다니는 것도 좋겠다. 요리학원? 그림학원? 발레? 영어학원? 왠지 공부하는 학원은 싫다. 근데 생각하다보니 교회다니고 맘카페 열혈회원이 되고 헬스다니고 학원다니는 거, 퇴사 안해도 시간 쪼개면 다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역시 난 너무 게을러. 체력이 없어서 그렇기도 하고 타고난 성향탓도 있다.

인간은 참 희한한 존재다. 평화로운 일상이 주어지면 지루해한다. 모든 것을 다 가지면 허무함을 느낀다. 아무것도 걱정할 게 없이 평온한 나날이 이어지면 스스로 걱정거리를 만들어내서 걱정을 하며 스트레스를 받는다. 아무래도 인간은 걱정을 안하면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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