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봤다. <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박보영 박서준 이병헌이 주연이다. 연기에 미친 자 이병헌이 역시나 이번에도 하드캐리를 한다. 그야말로 미친놈으로 나온다. 맡은 역할이 그냥 미친놈이다. <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해피엔딩이라기엔 약간 현실적인듯 비현실적인듯한 엔딩으로 끝나서 찜찜하다는 후기도 있었는데, 나는 그런 감상평을 봐서 그런지 오히려 괜찮은 엔딩이라고 느꼈다. 같이 본 남편은 원래 영화를 보고나서도 아무 말이 없는 사람인데 <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보고 나서는 인물의 감정 묘사가 굉장히 현실적이라고 호평했다. 일례로 박서준이 사람을 때리는 장면에서 박보영이 그만해!라고 외치는 부분에서 내가 박보영이 답답하다고 현실을 모른다고 했더니, 남편왈 '너는 만약 내가 사람을 죽일듯이 패고 있으면 어떨 것 같냐'고 묻는 거다. 솔직히 충격받아서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왜냐면 평소에 절대 절대 사람을 장난으로라도 때리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근데 상상이 바로 됐다. 정말 목숨이 걸린 전쟁 같은 상황에서는 남편이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순식간에 눈앞에서 그 장면이 그려져서 정신이 아득해졌다. 심지어 나는 < 콘크리트 유토피아>에 나오는 박보영처럼 마음이 아름답고 선한 사람이 아닌데도 그랬다. < 콘크리트 유토피아>에 나오는 아파트 주민들도 마찬가지다. 겉으로는 다들 이기적이고 나쁜 사람들인 것 같은데, 막상 자기 손에 피를 묻히는 상황이 되면 다들 피한다. 그렇게 주민들은 아파트에 목숨까지 바치는 미친놈인 이병헌에게 아파트 리더를 떠넘긴다. 이병헌은 미친놈답게 자기 손에 피를 거침없이 묻히며 아파트를 외부로부터 지킨다. 근데 알고보니 이미 피가 묻어서 미쳐버린 상태였던거다. 사람은 이기적인 것 같아도 막상 자기가 직접 범죄를 저질러야 하는 상황이 오면 당황하고 꺼리게 된다는 걸 알려주는 작품이 바로 < 콘크리트 유토피아>다. 외면하고 싶은 불편한 진실인건지, 사실 성선설이 진리라고 외치는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병헌은 아파트 사기를 당한 불쌍한 주민으로 나온다. 자기 집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남이 살고 있는 개 같은 경우를 바로 이병헌이 당한다. 눈이 뒤집힌 이병헌은 평생 모은 돈을 지키기 위해 몸싸움을 벌이다 그만 사람을 죽이고 만다. 상대방이 넘어지다가 가구 모서리에 머리를 박았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이병헌은 정신줄을 놔버린 것 같다.
아파트 주민들은 이병헌이 대신 손에 피를 묻혀주니까 신나서 그 뒤에 숨어서 나쁜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른다. 아파트 주민이 아닌 사람들을 모두 추운 거리로 내쫓아 죽게 만들고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잔치를 열어 노래 부르고 춤까지 춘다. 춤 추는 주민들의 그림자가 모닥불을 통해 아파트 건물에 비치는 장면은 정말 기괴하고 소름끼쳤다. 아파트가 뭐길래, 도대체 아파트가 뭐길래... 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였다. 모든 게 지진으로 무너져 내리고 부서진 아파트에 의지해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현실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 > 영화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화 < 천박사 퇴마연구소> 설경의 비밀 리뷰 (0) | 2023.10.06 |
---|---|
영화 < 잠> 결말 해석 - 이선균, 정유미, 김국희 출연 (0) | 2023.09.16 |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3 후기 (0) | 2023.05.21 |
영화 < 스즈메의 문단속> 리뷰 (0) | 2023.04.02 |
영화 '한산 : 용의 출현' 후기 (0) | 2022.11.18 |